최창환 기자 / 기사승인 : 2025-02-08 06:00:47

[점프볼=최창환 기자] 무려 1년 2개월에 걸쳐 진행됐던 턴 오버 프로젝트가 막을 내렸다. 하승진(40)과 전태풍(45)이 야심차게 기획했던 턴 오버는 프로선수를 배출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아니었다. 농구를 통해 새로운 팬덤을 끌어모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들은 잠시 숨을 고른 후 새로운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는 농구 저변 확대 프로젝트다.
※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2월호에 게재됐으며, 인터뷰는 1월 7일에 진행됐습니다.

턴 오버를 거쳐 드래프트에 참가했던 선수들은 모두 선택을 받지 못했다. 드래프트가 끝난 이후 어떻게 지냈나?
전태풍 번아웃이 왔었다. 한동안 기분이 저하된 상태로 보냈는데 그래도 모처럼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회복한 이후에는 체육관 업무에 집중했다.
하승진 최근에 미국 다녀온 얘기는 왜 안 해? 내가 설명을 보태자면, (전)태풍이 형은 1년 동안 하루도 못 쉬었다. 태풍이 형 체육관(전태풍 앵클브레이커)이 월요일만 쉬는데 턴 오버 훈련을 월요일에 했다. 1년 내내 못 쉬었으니 가족이 얼마나 그리웠겠나. 그래서 미국에 다녀온 것 같다. 태풍이 형, 포장 잘했지?
전태풍 예스, 예스!
번아웃이 왔던 이유는?
전태풍 턴 오버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지도하는 것에 대한 기대가 컸다. 두 달 정도면 발전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예상과 반대의 결과물이 나와 힘들었다. 내가 누군가를 지도하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엄청 떨어졌다. 중반부에 선수들의 기량이 조금 올라가는 듯 보였는데 이후 또 떨어지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다 보니 내 기분도 기복이 심했다. 그러다 드래프트에서는 1명도 선발되지 않았다. 그게 나에겐 카운터펀치였다. 바로 KO 되면서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다.
드래프트 현장에 있을 때 기분은 어땠나?
하승진 나는 선수 시절 드래프트를 두 번 경험했다. 드래프트에 나갈 때마다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기자들도 현장 가보면 느껴지지 않나. 정말 숨이 막힌다. 참가한 선수들과 지인들, 가족들, 지도자들 모두 얼마나 힘들었을지 새삼 느껴졌다. 내가 직접 참가한 드래프트가 아니었는데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기분이었다. 공기 자체가 무겁다고 해야 할까.
전태풍 자식들을 바라보는 기분이어서 너무 마음 아팠다. 유튜브 촬영 중이어서 욕하고 소리 지르고 싶은 마음을 겨우 참았다. 끝나고 집에 어떻게 갔는지 기억이 안 난다. 몸은 차 안에 있는데 정신은 계속 체육관에 있는 느낌이었다. 얘기하니까 그날 체육관에 다시 와있는 것 같다. 너무 열받는다.
‘드래프트는 프로스포츠에서 가장 잔인한 행사’라는 표현도 있다.
하승진 사회도 마찬가지다. 대학 진학할 때도, 회사 입사할 때도 똑같다고 생각한다. 비단 드래프트만 잔인하다고 보면 안 된다. 미디어에 노출되는 행사여서 더 두드러질 뿐이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나. 사실 드래프트 현장을 촬영하는 것에 대해선 PD들과 정말 많이 고민했다. 전날까지도 결정을 못 내렸다. 지명되지 않는 선수들도 있을 텐데 그것까지 카메라에 담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었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모든 과정을 보여주자는 취지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래서 가슴 아픈 일이지만 다 촬영했다. 물론 PD들도, 나나 태풍이 형도 힘들었다.
드래프트에서 탈락한 선수들에게 어떤 위로를 건넸나? 어떤 말도 위로가 될 수 없었겠지만….
하승진 오히려 선수들이 먼저 연락을 줘서 고마웠다. 우리가 먼저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인사치레처럼 느껴질 수도 있어서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먼저 “괜찮습니다. 형님, 고생 많으셨어요”라고 연락해 줘서 고마웠다.
1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어떤 부분을 보완할 것 같나?
전태풍 시작할 때부터 (하)승진이랑 마음이 똑같았다. 미국 스타일대로 가르치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오랫동안 한국에서 훈련했던 선수들이었기 때문에 훈련 스타일에 적응하는 데에 힘들어하는 부분이 있었다. 중반 이후부터 미국과 한국의 중간 정도 되는 스타일로 훈련했다.
하승진 태풍이 형이 직접 선수들을 지도하는 입장이었다면, 나는 울타리를 만들어 주는 역할이었다. 울타리 안에서 스태프, 선수들, 지도자 모두 원활히 훈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어야 하는데 그렇게 못 해준 게 미안하다. 아직도 마음에 남아있다. ‘더 좋은 훈련 환경 속에 진행했다면 결과가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있다. 그런데 앵클브레이커를 너무 코딱지만 하게 지었다. 태풍이 형, 왜 이렇게 작게 지은 거야? 도와준다는 체육관도 몇 군데 있었는데….
전태풍 뭐? 어디가? 세 군데만 얘기해 봐. 시작할 때 우리 도와준다고 한 사람 1명도 없었잖아.
하승진 맞아. 없었어(웃음).

자체 제작하는 프로그램이어서 후원사를 유치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다. 이 가운데에도 점점 스폰서십을 늘려가는 게 인상적이었다.
하승진 직접 해보니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그래도 찾아다니다 보니 길이 열리더라. 턴 오버를 먼저 보고 연락을 준 분들도 있었다. 나 스스로도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보완해야 할 점은 어떤 게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 나중에는 대인기피증이 생겨 사람들을 못 만났다. 좋은 걸 얻어내기 위해 굽신거리며 다니니까 자존감이 낮아지고 자괴감도 들었다.
전태풍 그거 인정. 승진이 진짜 고생 많이 했다.
하승진 나나 가족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아무렇지 않게 했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 프로젝트는 그게 아니었다. 내가 뭐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자존감 낮아지면서까지 해야 하나 싶은 마음도 들었다. 이 얘기는 태풍이 형에게도 몇 번 했다.
전태풍 내가 “야, XX 괜찮아. 그냥 한잔해. 심플 이즈 베스트! OK?”라고 했잖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도 부족한 지도자라는 걸 느껴서 현타가 왔지(웃음).
하승진 그래서 태풍이 형한테 똑같이 얘기해줬다. “형, 처음부터 잘하는 지도자가 어딨어? 명장들도 처음부터 잘했겠어? 심플 이즈 베스트! 한잔해!”라고 했다(웃음).
술 먹방 보는 것 같은 케미다.
하승진 그런가(웃음). 아, 태풍이 형. 나 얼마 전에 사무실 이전했잖아. 창고에 보니까 캪틴큐 몇 병 더 있더라고.
전태풍 What? 또 있어? 이제 술 먹방 하면 똥술 말고 콘셉트 바꾸자. 퀄리티 있게 위스키 마시면서 해야지. 똥술은 이제 재미없어. (캪틴큐는 무슨 맛인가?)하수구 맛이다. 그걸 왜 마시는 거야?
비록 드래프트에서 선발되진 못했지만, 팬덤이 형성된 건 고무적인 부분일 텐데?
하승진 나도 그 얘기를 하고 싶었다. 무명이었던 선수들에게 엄청난 팬덤이 형성됐다. 현역 프로선수와 다녀도 턴 오버 선수만 알아보는 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턴 오버를 통해 또 다른 팬덤을 농구에 유입시켰다는 건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들 농구 인기 없다고 하지만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았나. 새로운 팬덤을 끌어모을 방법은 있다는 걸 증명했다고 생각한다.
전태풍 선수들이 경험했다는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프로젝트였다. 선수도, 지도자도 계속 시간에 투자해야 한다. 기복을 거치겠지만, 거기에 너무 깊게 빠지지 말고 계속 시도를 해봐야 한다. 드래프트에서는 떨어졌지만, 턴 오버 멤버들의 인기가 많아진 게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거슬러 올라가 턴 오버를 처음 기획하게 된 배경은 무엇이었나?
전태풍 승진아. 이거 네가 얘기해. 나는 처음에 안 한다고 했잖아. 말해 봐.
하승진 형이 그랬다고? 나는 대화가 한 방에 해결됐던 걸로 기억하는데!?
전태풍 에이, 진짜 아니야. 2023년 9월쯤 이런 프로젝트를 해보자는 얘기를 처음 들었다. 그때만 해도 드래프트는 보통 10월이었다. 그럼 1년도 안 남았다는 건데 그때부터 숙소, 체육관 등등을 준비하려면 시간이 촉박했다. 그래서 나는 안 한다고 했다. 취지는 좋지만 너무 성급해 보였다. 1년 이상 준비할 시간이 있어야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너는 제대로 기억 못 하지만, 어쨌든 잘했어(웃음).
이전 콘텐츠에 비하면 턴 오버의 조회수는 많이 적었다. 그로 인한 손실도 컸을 텐데?
하승진 태풍이 형도, 턴 오버 선수들도 프로젝트가 끝난 후 일상으로 돌아갔다. 나는 데미지를 온몸으로 받고 있다. 일단 PD 1명이 퇴사했다. 손실이 너무 컸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후 사무실도 절반 정도로 줄여서 이전했다. 당근 온도는 51도까지 올라갔다.
전태풍 그 정도로 다 팔았어? 야, 너 진짜 웃긴다. 나한테 당근 한다고 겁나 뭐라고 했으면서.
하승진 (어플을 보여주며)진짜야. 사무실 이전하면서 온도가 확 올라갔다. 퇴사한 직원 퇴직금도 줘야 했고, 손실도 메워야 했다. 사무실이 줄어드니 정리해야 할 짐도 많았다. 돈 될만한 거는 다 팔았고, 나눔도 많이 했다.
직거래하면 사람들이 알아보지 않나?
하승진 내 이름을 남긴 분들의 후기는 다 숨김 처리했다. 턴 오버는 끝났지만, 나에겐 아주 뜨거운 당근 온도가 남았다(웃음).
팬들의 지지도 얻었는데?
하승진 그렇다. 이전까지는 나나 태풍이 형 마주치면 잘 보고 있다고 인사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턴 오버할 때는 좋은 프로그램 만들어주셔서 감사드린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전태풍 맞아. 요새 턴 오버 팬들이 이제 볼 거 없다고 아쉬워 하더라.

프로젝트 도중 하차한 정희현은 B.리그 B3(3부 리그)에 진출했다. 그것도 턴 오버의 순기능 중 하나일 텐데?
하승진 그렇다. 어떻게 보면 일본 측에서도 굉장한 모험이었다. 아시아쿼터로 데려오는 한국 선수가 프로 경험도, 심지어 대학 시절 이렇다 할 기록도 없었다. 고등학생 시절 기록이 전부인데 이걸로 프로선수가 된다면 우려가 따랐겠지만, 일본 팀에서 턴 오버 영상을 하이라이트로 접했다. 수준이 높은 선수를 상대로도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고, 이 정도 경쟁력이면 프로나 대학 커리어가 없어도 뛸 수 있을 거라 판단해 계약이 성사된 것이었다. 턴 오버가 아니었다면? 물론 가능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쉽진 않았을 것이다.
전태풍 내가 봤을 땐 턴 오버 없었으면 프로선수로 뛸 수 없었다. 그냥 일반인으로 남았을 것이다. (정)희현이는 착하고 열정도 장난 아니었다. 경험이 부족했지만, 그건 계속 뛰어야 쌓을 수 있는 부분이다.
하승진 인성적으로도 굉장히 훌륭한 선수였다. 항상 겸손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알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외형적인 면만 보면 얼굴이 날카롭고 몸에 타투도 있어서 까칠하다고 느껴지겠지만, 실제 성격은 정반대다. 우리도 의외였다. 대학 시절 이슈 때문에 팀을 나왔다는 소문을 들어 성격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닐까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너무 착하고 좋은 인성을 지닌 동생이었다.
정성조도 턴 오버에 합류할 뻔했다고 들었다.
하승진 연습경기를 두 차례 같이 했다. 그러면서 밥도 먹고, 연락처도 주고받았다. 제안을 했을 때 흔쾌히 하겠다는 답변도 들었다. 턴 오버 멤버들에게도 다 물어본 상태였다. 그런데 슈팅가드가 너무 많아서 태풍이 형과 고민했다. (정)성조까지 들어오면 가드만 7명이었다. 출전시간이 서로 줄어들기 때문에 합류하면 결과적으로 마이너스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정성조가 선발됐을 때 기분은?
전태풍 너무 좋았다. 턴 오버가 가족이라면, 성조는 사촌 느낌이다. 똑같은 마음으로 응원했다.
하승진 성조 같은 일반인이 KBL에 입성하는 것 자체가 없었던 일 아닌가. 선발된 것만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몰랐던 시장에서도 프로선수가 배출된 건 그 자체로 이슈가 된다. 눈길도 한 번 더 가게 되지 않겠나. 그래서 응원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팬들이 모르는 게 있는데 나도 일반인 출신이다. 일반인 최초 1순위, 그러니까 성조는 나의 일반인 후배다(웃음).

턴 오버 시즌2를 기대해도 좋을까?
하승진 하게 된다면 당근 온도가 85도까지 올라갈 것 같다(웃음). 사무실이 10평에서 5평으로 줄어들었다. 시즌1 끝나자마자 둘 다 시즌2는 없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태풍이 형이 최근에 너무 아쉬우니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해보자는 말을 했다. 기회만 된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다시 도전해 볼 것 같다. 다만, 시즌1처럼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하는 건 모두에게 무리다. 빌드업을 착실히 해야 한다.
전태풍 만약 시즌2 만들면 시즌1 보다 10배 더 잘할 수 있다. 경험을 해봤으니까.
스킬 트레이닝센터를 운영하는 게 오랜 꿈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앵클브레이커를 설립하게 된 과정은?
전태풍 새로운 경험을 쌓아보고 싶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나는 농구 빼면 아는 게 아무 것도 없구나’라는 걸 많이 느낀다. 체육관 오픈하면 여러 명이 올 거니까 가르치면 되겠지 싶었다. 그런데 비즈니스도 잘해야 사업가가 되는 것이었다. 지금은 적응이 됐다. 숨 쉴 정도는 된다. ‘1호점 잘 되면 15호점까지 늘려야지’라는 각오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멘탈이 회복됐다.
전정민, 서문세찬이 트레이너로 합류했는데?
전태풍 둘 다 성격이 너무 좋다.
하승진 다른 친구들은 별로였다는 거야(웃음)?
전태풍 그게 아니라, 학생들을 더 잘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아서 뽑았다. (전)정민이는 마침 집이 가깝다. (서문)세찬이는 차가 있어서 출퇴근이 수월하다.
하승진 정민이가 먼저 합류했고, 세찬이는 나중에 들어왔다. 사실 세찬이는 아직 선수 생활을 더 하고 싶어 한다. 해외 진출도 알아보고 있다. 일단 도전을 하려면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 두 가지를 병행할 수 있어서 들어오게 됐다.
앵클브레이커의 직원은 총 몇 명인가?
전태풍 트레이너 2명, 개발자 1명, 기사 1명까지 총 4명이다.
하승진 형도 직원인데 그럼 5명이잖아. 대표는 형이 아니고 미나(전태풍 아내) 누나잖아.
전태풍 직원이면 돈 벌어야 하잖아. 나는 돈 못 벌어. 계좌번호도 없어. 재능기부 하는 거야(웃음). 목표는 15호점까지 오픈하는 것이다.
하승진 태풍이 형은 미국에서 가져온 농구 DNA를 뿌리고 싶어 한다. 투명한 물컵에 검은색 한 방울 떨어뜨린다고 티가 나겠나. 그런데 몇 방울이 쌓이다 보면 색이 변한다. 태풍이 형도 자신이 배웠던 농구를 뿌려서 한국 농구를 발전시키고 싶어 한다. 허세, 빈말로 15호점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농구 가르쳐달라고 하면 대충 가르쳐주지 않는다. 팔 각도부터 해서 진심으로 가르쳐주는 사람이다.
KBL에 처음 왔을 때 한국의 스킬 트레이닝 시스템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다는 걸 느껴서 결심을 세웠던 건가?
전태풍 이 얘기가 나가도 될지 모르겠지만 2009년으로 기억한다. 드래프트 전 KBL 경기를 보러 갔다. 아마 SK와 전자랜드의 경기였을 것이다. 체육관도 멋있고, 치어리더 공연도 화려한데 선수들 기술을 보면 음…. 나도 같은 한국인인데 뭔가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물론 나도 부족한 부분이 있는 선수였지만, 유럽리그에서 뛸 때 내가 잘하는 걸 보여주면서 경쟁했다. 그 경기를 보며 ‘우리나라 선수들은 왜 이렇게 하지? 기본기 더 갖추면 발전할 수 있을 텐데…’라는 걸 느꼈다. KBL에 데뷔한 이후에도 매 시즌 똑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은퇴 후 체육관을 차리고 싶다는 목표를 계속 간직하고 있었다.
최근에도 KBL을 챙겨보나?
하승진 뉴스를 접하긴 하는데 경기를 많이 챙겨보진 못했다. 집에 TV가 없다.
TV도 당근으로 팔았나?
하승진 그건 아니다(웃음). 아이들 공부하는 데에 방해될 것 같아서 치웠다. 그래도 어떻게 흘러가는지, 어떤 이슈가 있는지, 어떤 선수가 잘하는지는 알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선수를 꼽는다면?
전태풍 나는 이정현(소노). 너무 좋다. 얘는 뭔가 달라.
하승진 아, 나도 이정현 말하려고 했다. 최근 일본에서 카와무라 유키라는 NBA리거가 나왔다. 카와무라는 교포도, 혼혈도 아닌 순수 일본인이다. 자국리그에서 뛰다가 NBA에 진출했는데 맞대결에서는 이정현이 이겼다. 내가 봐도 이정현이 더 나았다. 그렇다면 한국도 카와무라 같은 사례가 나올 수 있다는 의미다. 그게 이정현이 되지 않을까.
전태풍 시즌 끝나면 미국에 도전하러 가야 된다. 떨어지더라도 해봐야 뭐가 부족한지 아는 것 아닌가. 다 경험이다. 처음에는 긴장하고, 실수해서 떨어질 수 있다. 그러면 1년 후 어떤 걸 준비해서 가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이미지 트레이닝도 더 하면서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하승진 우리나라 선수들은 이정현을 보고 배워야 한다. 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을 텐데 이정현은 어쩜 저렇게 다른 스타일의 농구를 하는 걸까. 이걸 배워야 한다. 이정현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개인훈련을 어떻게 했는지, 어린 시절 어떤 환경에 노출됐는지 취재해 줬으면 좋겠다. 나도 궁금하다.
전태풍 내가 알려줄게. 전태풍 앵클브레이커에 와. 나한테 배우면 돼. 그럼 이정현보다 업그레이드될 수 있어(웃음).
앵클브레이커에는 주로 어떤 선수들이 오는가?
전태풍 프로선수 중에는 김선형, 송교창, 허훈, 정인덕, 최성원, 안영준이 왔다. 자밀 워니도 가끔 오고, 여자선수 중에는 신지현이 왔다. 대학 외에 고등학교, 중학교 엘리트 선수들도 많이 온다. 위치가 외곽인데도 인천, 의정부, 대전뿐만 아니라 미국, 호주에서도 온다.
하승진 전주에서는 안 와?
전태풍 아, 전주 사는 초등학생도 부모님이랑 왔어.
하승진 그럼 앵클브레이커 2호점을 전주에 오픈하는 건 어때?
전태풍 아니야. 2호점은 수도권이나 서울에 열 거야.
하승진 여기가 수도권이잖아.
전태풍 여기? 위치를 봐. 여기는 지방이야(웃음).
소셜미디어를 보면 KCC에 대한 애정이 여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승진 내가 응원할 수 있는 팀이 많지 않다. 아쉽게 은퇴했지만 고향이다. 내가 KBL에서 뛰었던 유일한 팀이이어서 당연히 응원할 수밖에 없다. 내가 생뚱맞게 다른 팀을 응원할 수도 없지 않겠나. (잠시 생각한 후)아, KT를 응원하면 될 것 같다(웃음). *하승진은 수원에 거주하고 있으며, 야구단 KT 위즈의 팬이다.
조심스러운 질문이지만, 은퇴식이 없었던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팬들이 많았다.
하승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왜 은퇴식을 열어주지 않느냐는 기사도 나왔었다. 이후 팀에서 연락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3~4일 뒤에 은퇴식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시즌이 개막한 데다 나도 방송 일정이 잡혀있는 상태였다. 방송을 취소할 순 없어서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다 지나간 일이다.

KCC의 연고지 이전 소식이 보도된 후 아쉬움을 토로한 콘텐츠도 봤다.
하승진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화가 났다. 전주시는 내가 신인일 때부터 체육관 새로 짓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런데 번번이 지어지지 않아서 선수들도 나중에는 믿지 말자는 분위기가 됐다. KCC는 전주를 팀명에 달고 뛰어서 멋진 팀이었다. KCC 이지스가 아니라 전주 KCC 이지스여서 멋있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됐다는 게 너무 화가 난다. 어떻게 보면 나나 태풍이 형의 추억도 사라졌다.
WKBL 챔피언결정전에서 객원 해설위원도 맡았는데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나?
하승진 진지하게 임해야 하는 자리인데 해설하다 보니 웃기게 얘기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 겨우 참았다.
전태풍 근데 승진아. 나 궁금한 거 있어. 해설하면 PD가 진지하게 해야 한다고 시켜? 왜 다들 진지하게 해설하는 거야?
하승진 그런 건 아닌데 나도 재밌게 하려고 가발 쓰고 한 적이 있어. 그런데 말까지 웃기게 하면 해설이 아니라 웃기러 나왔냐고 할 수도 있잖아.
전태풍 그걸 바꿔야지. 네가 바꿔 봐. 해설도 웃길 수 있잖아. 나 부르면 큰일 날까 봐 아무도 안 부르는 건가?
하승진 그건 다른 방송이랑 달라. 웃기려고 하면 안 돼. 직접 해보니 해설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나도 공부하고 갔는데 농구는 전개가 워낙 빠르다 보니 쉽지 않다는 걸 느꼈다. 해설하는 분들이 대단하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조카(제이든 애킨스)가 미시건주립대에서 농구선수로 뛰고 있다. 객관적인 실력은 어느 정도인가?
전태풍 내가 봤을 때 실력은 프로페셔널하다. 그런데 대학을 잘못 갔다. 미시건주립대 감독이 30년 정도 된 사람인데 미국의 꼰대 같은 스타일이다. 요새는 포지션을 하나만 맡는 게 아닌데 롤플레이어로 뛰고 있다. 그래서 대학 선택이 정말 중요한 것이다. 단순히 학교 이름만 보는 것보단 감독 스타일도 봐야 한다. 그건 한국도, 사업도, 직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회사에 들어가서 일하면 잘 맞는 사람이랑 일해야 하지 않겠나. 나 앵클브레이커 운영하면서 많이 큰 것 같다(웃음).

턴 오버 프로젝트 이후 활동 계획은?
전태풍 첫 번째는 농구교실 잘 운영하는 것이다. 농구 잘하고 싶어하는 아이들 더 많이 도와주고 싶다. 두 번째는 승진이 응원하는 것이다. 승진이가 하는 일이라면 옆에서 다 응원하겠다. 캪틴큐 마시는 것만 빼고. 심플 이즈 베스트!
하승진 나는 준비하고 있는 게 있다. 현장에서 일하는 건 아니지만, 유튜브 등 변두리에서 농구를 지원사격하는 게 내 목표였다. 그래서 새로운 팬덤 형성을 위해 턴 오버를 시작했던 것이다. 턴 오버는 프로에 도전하는 프로젝트였고, 두 번째는 농구 저변 확대에 도움을 주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 유튜브에서 몇 차례 얘기했는데 결국 우리나라 농구가 발전하려면 유소년농구, 클럽스포츠가 성장해야 한다. 그래야 농구 인구도 늘어나며 발전할 수 있다. 나는 말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행동으로 옮길 것이다. 2월 14일부터 16일까지 가평에 있는 수련원에서 우리 둘의 이름을 딴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학생들이 대상이며, 유튜브 콘텐츠는 아니다. 오로지 오프라인에서만 진행할 계획이다. 턴 오버와 마찬가지로 속상한 얘기인데 수익이 남는 일은 아니다. 수익은 참가비가 전부인데 그걸로 식대, 숙소 계산하면 남는 게 없다. 그나마 적자는 아니다. 태풍이 형, 미안하지만 수익은 0이야.
전태풍 괜찮아. 나 이제 익숙해졌어.
빈말이 아니라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승진 그렇다고 우월감 과시하려는 건 아니다.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판을 만들고 싶었다. SBS에서 ‘매치업’을 기획했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초대 대회여서 규모가 크진 않지만, 팀별로 5경기 정도씩 총 34경기가 열릴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보통 당일치기로 열리는 대회는 피곤하고 씻을 공간도, 먹을 공간도 마땅치 않다. 이번 대회는 쉴 수 있는 공간이 있기 때문에 2박 3일 동안 먹고 자면서 농구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짜임새 있는 대회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하겠다.

턴 오버 프로젝트는?
하승진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2023년 9월부터 2024년 11월까지 진행했던 웹다큐멘터리다. 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탈락한 엘리트 출신 선수들과 다시 한 번 KBL에 도전하는 과정을 다뤘다. 하승진이 기획했고 전태풍, 최윤아, 하은주 등이 스킬트레이닝 및 수비 훈련, 재활 등을 담당했다. 정연우, 서문세찬, 이승구가 2024 신인 드래프트에 도전했으나 선발되진 못했다. 정희현은 중도 하차 후 B.리그 B3(3부 리그) 쇼난 유나이티드 BC와 계약, 프로선수라는 꿈을 이뤘다.
#사진_문복주 기자
[저작권자ⓒ 점프볼.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최창환 기자 / 기사승인 : 2025-02-08 06:00:47
[점프볼=최창환 기자] 무려 1년 2개월에 걸쳐 진행됐던 턴 오버 프로젝트가 막을 내렸다. 하승진(40)과 전태풍(45)이 야심차게 기획했던 턴 오버는 프로선수를 배출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아니었다. 농구를 통해 새로운 팬덤을 끌어모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들은 잠시 숨을 고른 후 새로운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는 농구 저변 확대 프로젝트다.
※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2월호에 게재됐으며, 인터뷰는 1월 7일에 진행됐습니다.
턴 오버를 거쳐 드래프트에 참가했던 선수들은 모두 선택을 받지 못했다. 드래프트가 끝난 이후 어떻게 지냈나?
전태풍 번아웃이 왔었다. 한동안 기분이 저하된 상태로 보냈는데 그래도 모처럼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회복한 이후에는 체육관 업무에 집중했다.
하승진 최근에 미국 다녀온 얘기는 왜 안 해? 내가 설명을 보태자면, (전)태풍이 형은 1년 동안 하루도 못 쉬었다. 태풍이 형 체육관(전태풍 앵클브레이커)이 월요일만 쉬는데 턴 오버 훈련을 월요일에 했다. 1년 내내 못 쉬었으니 가족이 얼마나 그리웠겠나. 그래서 미국에 다녀온 것 같다. 태풍이 형, 포장 잘했지?
전태풍 예스, 예스!
번아웃이 왔던 이유는?
전태풍 턴 오버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지도하는 것에 대한 기대가 컸다. 두 달 정도면 발전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예상과 반대의 결과물이 나와 힘들었다. 내가 누군가를 지도하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엄청 떨어졌다. 중반부에 선수들의 기량이 조금 올라가는 듯 보였는데 이후 또 떨어지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다 보니 내 기분도 기복이 심했다. 그러다 드래프트에서는 1명도 선발되지 않았다. 그게 나에겐 카운터펀치였다. 바로 KO 되면서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다.
드래프트 현장에 있을 때 기분은 어땠나?
하승진 나는 선수 시절 드래프트를 두 번 경험했다. 드래프트에 나갈 때마다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기자들도 현장 가보면 느껴지지 않나. 정말 숨이 막힌다. 참가한 선수들과 지인들, 가족들, 지도자들 모두 얼마나 힘들었을지 새삼 느껴졌다. 내가 직접 참가한 드래프트가 아니었는데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기분이었다. 공기 자체가 무겁다고 해야 할까.
전태풍 자식들을 바라보는 기분이어서 너무 마음 아팠다. 유튜브 촬영 중이어서 욕하고 소리 지르고 싶은 마음을 겨우 참았다. 끝나고 집에 어떻게 갔는지 기억이 안 난다. 몸은 차 안에 있는데 정신은 계속 체육관에 있는 느낌이었다. 얘기하니까 그날 체육관에 다시 와있는 것 같다. 너무 열받는다.
‘드래프트는 프로스포츠에서 가장 잔인한 행사’라는 표현도 있다.
하승진 사회도 마찬가지다. 대학 진학할 때도, 회사 입사할 때도 똑같다고 생각한다. 비단 드래프트만 잔인하다고 보면 안 된다. 미디어에 노출되는 행사여서 더 두드러질 뿐이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나. 사실 드래프트 현장을 촬영하는 것에 대해선 PD들과 정말 많이 고민했다. 전날까지도 결정을 못 내렸다. 지명되지 않는 선수들도 있을 텐데 그것까지 카메라에 담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었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모든 과정을 보여주자는 취지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래서 가슴 아픈 일이지만 다 촬영했다. 물론 PD들도, 나나 태풍이 형도 힘들었다.
드래프트에서 탈락한 선수들에게 어떤 위로를 건넸나? 어떤 말도 위로가 될 수 없었겠지만….
하승진 오히려 선수들이 먼저 연락을 줘서 고마웠다. 우리가 먼저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인사치레처럼 느껴질 수도 있어서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먼저 “괜찮습니다. 형님, 고생 많으셨어요”라고 연락해 줘서 고마웠다.
1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어떤 부분을 보완할 것 같나?
전태풍 시작할 때부터 (하)승진이랑 마음이 똑같았다. 미국 스타일대로 가르치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오랫동안 한국에서 훈련했던 선수들이었기 때문에 훈련 스타일에 적응하는 데에 힘들어하는 부분이 있었다. 중반 이후부터 미국과 한국의 중간 정도 되는 스타일로 훈련했다.
하승진 태풍이 형이 직접 선수들을 지도하는 입장이었다면, 나는 울타리를 만들어 주는 역할이었다. 울타리 안에서 스태프, 선수들, 지도자 모두 원활히 훈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어야 하는데 그렇게 못 해준 게 미안하다. 아직도 마음에 남아있다. ‘더 좋은 훈련 환경 속에 진행했다면 결과가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있다. 그런데 앵클브레이커를 너무 코딱지만 하게 지었다. 태풍이 형, 왜 이렇게 작게 지은 거야? 도와준다는 체육관도 몇 군데 있었는데….
전태풍 뭐? 어디가? 세 군데만 얘기해 봐. 시작할 때 우리 도와준다고 한 사람 1명도 없었잖아.
하승진 맞아. 없었어(웃음).
자체 제작하는 프로그램이어서 후원사를 유치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다. 이 가운데에도 점점 스폰서십을 늘려가는 게 인상적이었다.
하승진 직접 해보니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그래도 찾아다니다 보니 길이 열리더라. 턴 오버를 먼저 보고 연락을 준 분들도 있었다. 나 스스로도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보완해야 할 점은 어떤 게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 나중에는 대인기피증이 생겨 사람들을 못 만났다. 좋은 걸 얻어내기 위해 굽신거리며 다니니까 자존감이 낮아지고 자괴감도 들었다.
전태풍 그거 인정. 승진이 진짜 고생 많이 했다.
하승진 나나 가족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아무렇지 않게 했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 프로젝트는 그게 아니었다. 내가 뭐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자존감 낮아지면서까지 해야 하나 싶은 마음도 들었다. 이 얘기는 태풍이 형에게도 몇 번 했다.
전태풍 내가 “야, XX 괜찮아. 그냥 한잔해. 심플 이즈 베스트! OK?”라고 했잖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도 부족한 지도자라는 걸 느껴서 현타가 왔지(웃음).
하승진 그래서 태풍이 형한테 똑같이 얘기해줬다. “형, 처음부터 잘하는 지도자가 어딨어? 명장들도 처음부터 잘했겠어? 심플 이즈 베스트! 한잔해!”라고 했다(웃음).
술 먹방 보는 것 같은 케미다.
하승진 그런가(웃음). 아, 태풍이 형. 나 얼마 전에 사무실 이전했잖아. 창고에 보니까 캪틴큐 몇 병 더 있더라고.
전태풍 What? 또 있어? 이제 술 먹방 하면 똥술 말고 콘셉트 바꾸자. 퀄리티 있게 위스키 마시면서 해야지. 똥술은 이제 재미없어. (캪틴큐는 무슨 맛인가?)하수구 맛이다. 그걸 왜 마시는 거야?
비록 드래프트에서 선발되진 못했지만, 팬덤이 형성된 건 고무적인 부분일 텐데?
하승진 나도 그 얘기를 하고 싶었다. 무명이었던 선수들에게 엄청난 팬덤이 형성됐다. 현역 프로선수와 다녀도 턴 오버 선수만 알아보는 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턴 오버를 통해 또 다른 팬덤을 농구에 유입시켰다는 건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들 농구 인기 없다고 하지만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았나. 새로운 팬덤을 끌어모을 방법은 있다는 걸 증명했다고 생각한다.
전태풍 선수들이 경험했다는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프로젝트였다. 선수도, 지도자도 계속 시간에 투자해야 한다. 기복을 거치겠지만, 거기에 너무 깊게 빠지지 말고 계속 시도를 해봐야 한다. 드래프트에서는 떨어졌지만, 턴 오버 멤버들의 인기가 많아진 게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거슬러 올라가 턴 오버를 처음 기획하게 된 배경은 무엇이었나?
전태풍 승진아. 이거 네가 얘기해. 나는 처음에 안 한다고 했잖아. 말해 봐.
하승진 형이 그랬다고? 나는 대화가 한 방에 해결됐던 걸로 기억하는데!?
전태풍 에이, 진짜 아니야. 2023년 9월쯤 이런 프로젝트를 해보자는 얘기를 처음 들었다. 그때만 해도 드래프트는 보통 10월이었다. 그럼 1년도 안 남았다는 건데 그때부터 숙소, 체육관 등등을 준비하려면 시간이 촉박했다. 그래서 나는 안 한다고 했다. 취지는 좋지만 너무 성급해 보였다. 1년 이상 준비할 시간이 있어야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너는 제대로 기억 못 하지만, 어쨌든 잘했어(웃음).
이전 콘텐츠에 비하면 턴 오버의 조회수는 많이 적었다. 그로 인한 손실도 컸을 텐데?
하승진 태풍이 형도, 턴 오버 선수들도 프로젝트가 끝난 후 일상으로 돌아갔다. 나는 데미지를 온몸으로 받고 있다. 일단 PD 1명이 퇴사했다. 손실이 너무 컸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후 사무실도 절반 정도로 줄여서 이전했다. 당근 온도는 51도까지 올라갔다.
전태풍 그 정도로 다 팔았어? 야, 너 진짜 웃긴다. 나한테 당근 한다고 겁나 뭐라고 했으면서.
하승진 (어플을 보여주며)진짜야. 사무실 이전하면서 온도가 확 올라갔다. 퇴사한 직원 퇴직금도 줘야 했고, 손실도 메워야 했다. 사무실이 줄어드니 정리해야 할 짐도 많았다. 돈 될만한 거는 다 팔았고, 나눔도 많이 했다.
직거래하면 사람들이 알아보지 않나?
하승진 내 이름을 남긴 분들의 후기는 다 숨김 처리했다. 턴 오버는 끝났지만, 나에겐 아주 뜨거운 당근 온도가 남았다(웃음).
팬들의 지지도 얻었는데?
하승진 그렇다. 이전까지는 나나 태풍이 형 마주치면 잘 보고 있다고 인사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턴 오버할 때는 좋은 프로그램 만들어주셔서 감사드린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전태풍 맞아. 요새 턴 오버 팬들이 이제 볼 거 없다고 아쉬워 하더라.
프로젝트 도중 하차한 정희현은 B.리그 B3(3부 리그)에 진출했다. 그것도 턴 오버의 순기능 중 하나일 텐데?
하승진 그렇다. 어떻게 보면 일본 측에서도 굉장한 모험이었다. 아시아쿼터로 데려오는 한국 선수가 프로 경험도, 심지어 대학 시절 이렇다 할 기록도 없었다. 고등학생 시절 기록이 전부인데 이걸로 프로선수가 된다면 우려가 따랐겠지만, 일본 팀에서 턴 오버 영상을 하이라이트로 접했다. 수준이 높은 선수를 상대로도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고, 이 정도 경쟁력이면 프로나 대학 커리어가 없어도 뛸 수 있을 거라 판단해 계약이 성사된 것이었다. 턴 오버가 아니었다면? 물론 가능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쉽진 않았을 것이다.
전태풍 내가 봤을 땐 턴 오버 없었으면 프로선수로 뛸 수 없었다. 그냥 일반인으로 남았을 것이다. (정)희현이는 착하고 열정도 장난 아니었다. 경험이 부족했지만, 그건 계속 뛰어야 쌓을 수 있는 부분이다.
하승진 인성적으로도 굉장히 훌륭한 선수였다. 항상 겸손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알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외형적인 면만 보면 얼굴이 날카롭고 몸에 타투도 있어서 까칠하다고 느껴지겠지만, 실제 성격은 정반대다. 우리도 의외였다. 대학 시절 이슈 때문에 팀을 나왔다는 소문을 들어 성격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닐까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너무 착하고 좋은 인성을 지닌 동생이었다.
정성조도 턴 오버에 합류할 뻔했다고 들었다.
하승진 연습경기를 두 차례 같이 했다. 그러면서 밥도 먹고, 연락처도 주고받았다. 제안을 했을 때 흔쾌히 하겠다는 답변도 들었다. 턴 오버 멤버들에게도 다 물어본 상태였다. 그런데 슈팅가드가 너무 많아서 태풍이 형과 고민했다. (정)성조까지 들어오면 가드만 7명이었다. 출전시간이 서로 줄어들기 때문에 합류하면 결과적으로 마이너스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정성조가 선발됐을 때 기분은?
전태풍 너무 좋았다. 턴 오버가 가족이라면, 성조는 사촌 느낌이다. 똑같은 마음으로 응원했다.
하승진 성조 같은 일반인이 KBL에 입성하는 것 자체가 없었던 일 아닌가. 선발된 것만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몰랐던 시장에서도 프로선수가 배출된 건 그 자체로 이슈가 된다. 눈길도 한 번 더 가게 되지 않겠나. 그래서 응원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팬들이 모르는 게 있는데 나도 일반인 출신이다. 일반인 최초 1순위, 그러니까 성조는 나의 일반인 후배다(웃음).
턴 오버 시즌2를 기대해도 좋을까?
하승진 하게 된다면 당근 온도가 85도까지 올라갈 것 같다(웃음). 사무실이 10평에서 5평으로 줄어들었다. 시즌1 끝나자마자 둘 다 시즌2는 없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태풍이 형이 최근에 너무 아쉬우니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해보자는 말을 했다. 기회만 된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다시 도전해 볼 것 같다. 다만, 시즌1처럼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하는 건 모두에게 무리다. 빌드업을 착실히 해야 한다.
전태풍 만약 시즌2 만들면 시즌1 보다 10배 더 잘할 수 있다. 경험을 해봤으니까.
스킬 트레이닝센터를 운영하는 게 오랜 꿈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앵클브레이커를 설립하게 된 과정은?
전태풍 새로운 경험을 쌓아보고 싶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나는 농구 빼면 아는 게 아무 것도 없구나’라는 걸 많이 느낀다. 체육관 오픈하면 여러 명이 올 거니까 가르치면 되겠지 싶었다. 그런데 비즈니스도 잘해야 사업가가 되는 것이었다. 지금은 적응이 됐다. 숨 쉴 정도는 된다. ‘1호점 잘 되면 15호점까지 늘려야지’라는 각오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멘탈이 회복됐다.
전정민, 서문세찬이 트레이너로 합류했는데?
전태풍 둘 다 성격이 너무 좋다.
하승진 다른 친구들은 별로였다는 거야(웃음)?
전태풍 그게 아니라, 학생들을 더 잘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아서 뽑았다. (전)정민이는 마침 집이 가깝다. (서문)세찬이는 차가 있어서 출퇴근이 수월하다.
하승진 정민이가 먼저 합류했고, 세찬이는 나중에 들어왔다. 사실 세찬이는 아직 선수 생활을 더 하고 싶어 한다. 해외 진출도 알아보고 있다. 일단 도전을 하려면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 두 가지를 병행할 수 있어서 들어오게 됐다.
앵클브레이커의 직원은 총 몇 명인가?
전태풍 트레이너 2명, 개발자 1명, 기사 1명까지 총 4명이다.
하승진 형도 직원인데 그럼 5명이잖아. 대표는 형이 아니고 미나(전태풍 아내) 누나잖아.
전태풍 직원이면 돈 벌어야 하잖아. 나는 돈 못 벌어. 계좌번호도 없어. 재능기부 하는 거야(웃음). 목표는 15호점까지 오픈하는 것이다.
하승진 태풍이 형은 미국에서 가져온 농구 DNA를 뿌리고 싶어 한다. 투명한 물컵에 검은색 한 방울 떨어뜨린다고 티가 나겠나. 그런데 몇 방울이 쌓이다 보면 색이 변한다. 태풍이 형도 자신이 배웠던 농구를 뿌려서 한국 농구를 발전시키고 싶어 한다. 허세, 빈말로 15호점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농구 가르쳐달라고 하면 대충 가르쳐주지 않는다. 팔 각도부터 해서 진심으로 가르쳐주는 사람이다.
KBL에 처음 왔을 때 한국의 스킬 트레이닝 시스템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다는 걸 느껴서 결심을 세웠던 건가?
전태풍 이 얘기가 나가도 될지 모르겠지만 2009년으로 기억한다. 드래프트 전 KBL 경기를 보러 갔다. 아마 SK와 전자랜드의 경기였을 것이다. 체육관도 멋있고, 치어리더 공연도 화려한데 선수들 기술을 보면 음…. 나도 같은 한국인인데 뭔가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물론 나도 부족한 부분이 있는 선수였지만, 유럽리그에서 뛸 때 내가 잘하는 걸 보여주면서 경쟁했다. 그 경기를 보며 ‘우리나라 선수들은 왜 이렇게 하지? 기본기 더 갖추면 발전할 수 있을 텐데…’라는 걸 느꼈다. KBL에 데뷔한 이후에도 매 시즌 똑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은퇴 후 체육관을 차리고 싶다는 목표를 계속 간직하고 있었다.
최근에도 KBL을 챙겨보나?
하승진 뉴스를 접하긴 하는데 경기를 많이 챙겨보진 못했다. 집에 TV가 없다.
TV도 당근으로 팔았나?
하승진 그건 아니다(웃음). 아이들 공부하는 데에 방해될 것 같아서 치웠다. 그래도 어떻게 흘러가는지, 어떤 이슈가 있는지, 어떤 선수가 잘하는지는 알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선수를 꼽는다면?
전태풍 나는 이정현(소노). 너무 좋다. 얘는 뭔가 달라.
하승진 아, 나도 이정현 말하려고 했다. 최근 일본에서 카와무라 유키라는 NBA리거가 나왔다. 카와무라는 교포도, 혼혈도 아닌 순수 일본인이다. 자국리그에서 뛰다가 NBA에 진출했는데 맞대결에서는 이정현이 이겼다. 내가 봐도 이정현이 더 나았다. 그렇다면 한국도 카와무라 같은 사례가 나올 수 있다는 의미다. 그게 이정현이 되지 않을까.
전태풍 시즌 끝나면 미국에 도전하러 가야 된다. 떨어지더라도 해봐야 뭐가 부족한지 아는 것 아닌가. 다 경험이다. 처음에는 긴장하고, 실수해서 떨어질 수 있다. 그러면 1년 후 어떤 걸 준비해서 가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이미지 트레이닝도 더 하면서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하승진 우리나라 선수들은 이정현을 보고 배워야 한다. 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을 텐데 이정현은 어쩜 저렇게 다른 스타일의 농구를 하는 걸까. 이걸 배워야 한다. 이정현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개인훈련을 어떻게 했는지, 어린 시절 어떤 환경에 노출됐는지 취재해 줬으면 좋겠다. 나도 궁금하다.
전태풍 내가 알려줄게. 전태풍 앵클브레이커에 와. 나한테 배우면 돼. 그럼 이정현보다 업그레이드될 수 있어(웃음).
앵클브레이커에는 주로 어떤 선수들이 오는가?
전태풍 프로선수 중에는 김선형, 송교창, 허훈, 정인덕, 최성원, 안영준이 왔다. 자밀 워니도 가끔 오고, 여자선수 중에는 신지현이 왔다. 대학 외에 고등학교, 중학교 엘리트 선수들도 많이 온다. 위치가 외곽인데도 인천, 의정부, 대전뿐만 아니라 미국, 호주에서도 온다.
하승진 전주에서는 안 와?
전태풍 아, 전주 사는 초등학생도 부모님이랑 왔어.
하승진 그럼 앵클브레이커 2호점을 전주에 오픈하는 건 어때?
전태풍 아니야. 2호점은 수도권이나 서울에 열 거야.
하승진 여기가 수도권이잖아.
전태풍 여기? 위치를 봐. 여기는 지방이야(웃음).
소셜미디어를 보면 KCC에 대한 애정이 여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승진 내가 응원할 수 있는 팀이 많지 않다. 아쉽게 은퇴했지만 고향이다. 내가 KBL에서 뛰었던 유일한 팀이이어서 당연히 응원할 수밖에 없다. 내가 생뚱맞게 다른 팀을 응원할 수도 없지 않겠나. (잠시 생각한 후)아, KT를 응원하면 될 것 같다(웃음). *하승진은 수원에 거주하고 있으며, 야구단 KT 위즈의 팬이다.
조심스러운 질문이지만, 은퇴식이 없었던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팬들이 많았다.
하승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왜 은퇴식을 열어주지 않느냐는 기사도 나왔었다. 이후 팀에서 연락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3~4일 뒤에 은퇴식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시즌이 개막한 데다 나도 방송 일정이 잡혀있는 상태였다. 방송을 취소할 순 없어서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다 지나간 일이다.
KCC의 연고지 이전 소식이 보도된 후 아쉬움을 토로한 콘텐츠도 봤다.
하승진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화가 났다. 전주시는 내가 신인일 때부터 체육관 새로 짓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런데 번번이 지어지지 않아서 선수들도 나중에는 믿지 말자는 분위기가 됐다. KCC는 전주를 팀명에 달고 뛰어서 멋진 팀이었다. KCC 이지스가 아니라 전주 KCC 이지스여서 멋있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됐다는 게 너무 화가 난다. 어떻게 보면 나나 태풍이 형의 추억도 사라졌다.
WKBL 챔피언결정전에서 객원 해설위원도 맡았는데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나?
하승진 진지하게 임해야 하는 자리인데 해설하다 보니 웃기게 얘기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 겨우 참았다.
전태풍 근데 승진아. 나 궁금한 거 있어. 해설하면 PD가 진지하게 해야 한다고 시켜? 왜 다들 진지하게 해설하는 거야?
하승진 그런 건 아닌데 나도 재밌게 하려고 가발 쓰고 한 적이 있어. 그런데 말까지 웃기게 하면 해설이 아니라 웃기러 나왔냐고 할 수도 있잖아.
전태풍 그걸 바꿔야지. 네가 바꿔 봐. 해설도 웃길 수 있잖아. 나 부르면 큰일 날까 봐 아무도 안 부르는 건가?
하승진 그건 다른 방송이랑 달라. 웃기려고 하면 안 돼. 직접 해보니 해설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나도 공부하고 갔는데 농구는 전개가 워낙 빠르다 보니 쉽지 않다는 걸 느꼈다. 해설하는 분들이 대단하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조카(제이든 애킨스)가 미시건주립대에서 농구선수로 뛰고 있다. 객관적인 실력은 어느 정도인가?
전태풍 내가 봤을 때 실력은 프로페셔널하다. 그런데 대학을 잘못 갔다. 미시건주립대 감독이 30년 정도 된 사람인데 미국의 꼰대 같은 스타일이다. 요새는 포지션을 하나만 맡는 게 아닌데 롤플레이어로 뛰고 있다. 그래서 대학 선택이 정말 중요한 것이다. 단순히 학교 이름만 보는 것보단 감독 스타일도 봐야 한다. 그건 한국도, 사업도, 직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회사에 들어가서 일하면 잘 맞는 사람이랑 일해야 하지 않겠나. 나 앵클브레이커 운영하면서 많이 큰 것 같다(웃음).
턴 오버 프로젝트 이후 활동 계획은?
전태풍 첫 번째는 농구교실 잘 운영하는 것이다. 농구 잘하고 싶어하는 아이들 더 많이 도와주고 싶다. 두 번째는 승진이 응원하는 것이다. 승진이가 하는 일이라면 옆에서 다 응원하겠다. 캪틴큐 마시는 것만 빼고. 심플 이즈 베스트!
하승진 나는 준비하고 있는 게 있다. 현장에서 일하는 건 아니지만, 유튜브 등 변두리에서 농구를 지원사격하는 게 내 목표였다. 그래서 새로운 팬덤 형성을 위해 턴 오버를 시작했던 것이다. 턴 오버는 프로에 도전하는 프로젝트였고, 두 번째는 농구 저변 확대에 도움을 주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 유튜브에서 몇 차례 얘기했는데 결국 우리나라 농구가 발전하려면 유소년농구, 클럽스포츠가 성장해야 한다. 그래야 농구 인구도 늘어나며 발전할 수 있다. 나는 말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행동으로 옮길 것이다. 2월 14일부터 16일까지 가평에 있는 수련원에서 우리 둘의 이름을 딴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학생들이 대상이며, 유튜브 콘텐츠는 아니다. 오로지 오프라인에서만 진행할 계획이다. 턴 오버와 마찬가지로 속상한 얘기인데 수익이 남는 일은 아니다. 수익은 참가비가 전부인데 그걸로 식대, 숙소 계산하면 남는 게 없다. 그나마 적자는 아니다. 태풍이 형, 미안하지만 수익은 0이야.
전태풍 괜찮아. 나 이제 익숙해졌어.
빈말이 아니라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승진 그렇다고 우월감 과시하려는 건 아니다.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판을 만들고 싶었다. SBS에서 ‘매치업’을 기획했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초대 대회여서 규모가 크진 않지만, 팀별로 5경기 정도씩 총 34경기가 열릴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보통 당일치기로 열리는 대회는 피곤하고 씻을 공간도, 먹을 공간도 마땅치 않다. 이번 대회는 쉴 수 있는 공간이 있기 때문에 2박 3일 동안 먹고 자면서 농구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짜임새 있는 대회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하겠다.
턴 오버 프로젝트는?
하승진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2023년 9월부터 2024년 11월까지 진행했던 웹다큐멘터리다. 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탈락한 엘리트 출신 선수들과 다시 한 번 KBL에 도전하는 과정을 다뤘다. 하승진이 기획했고 전태풍, 최윤아, 하은주 등이 스킬트레이닝 및 수비 훈련, 재활 등을 담당했다. 정연우, 서문세찬, 이승구가 2024 신인 드래프트에 도전했으나 선발되진 못했다. 정희현은 중도 하차 후 B.리그 B3(3부 리그) 쇼난 유나이티드 BC와 계약, 프로선수라는 꿈을 이뤘다.
#사진_문복주 기자
[저작권자ⓒ 점프볼. 무단전재-재배포 금지]